문학저술활동
- 문학저술활동
- 역사전기소설
- 꿈하늘
- 용과 용의 대격전
- 이태리건국 삼걸전
- 을지문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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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나의 시체를 왜놈들이 밟지 못하도록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던 단재 신채호. 하지만 그의 유골 한줌은 고국 청주의 고령 신씨 고두미 마을로 돌아왔고 호적이 없던 그의 유택은 뜰 한켠에 마련되었으니, 그의 혼백은 지금도 편안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의 일생은 붕정만리(鵬程萬里)의 고단한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큰 뜻의 날개를 저어서 민족을 위한 역사의 바다를 떠다니시던 선생님. 죽어서도 구천의 넋으로 역사의 바다를 떠돌 것만 같은데 그의 문장을, 혹은 문학작품을 분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새로운 회의가 밀려든다.
단재는 민족문학의 맥을 잇는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한학에 능통하여 고전 전적(典籍)을 막힘 없이 읽고 비판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의 문학 영역은 한시, 시조, 근대시, 전(傳), 역사소설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 바, 바로 이 점은 단재가 문학의 형식을 다만 문장(文章) 또는 문(文)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단재문학에 대하여 요약하여 보면, 첫째, 단재 문학의 의의는 삶과 죽음의 절대주의 즉 일원론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단재가 흔히 알려진 것과 같이 문학의 대 사회적 효용성만을 중요시했던 것은 아니고 문학으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훌륭한 문장들을 생산한 문인으로서도 중요하다.
둘째, 단재는 양반 계층 출신이면서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섰다는 데 있다. 단재는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라는 복고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 해방을 위한 진보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 점은 되짚어 강조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단재는 전통적인 문학관 즉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일원론적 입장을 견지했다. '文은 氣이고 道는 理다'라는 조선후기 유가들이 가지고 있던 문학관을 일원론으로 이해하면서 비타협적 절대주의 문학관을 고수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셋째, 단재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주창한 민중의 직접 혁명은 '용과 용의 대격전', '꿈하늘'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민중의 직접혁명을 주장한 단재는 식민지적 현실을 적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민중적 세계관 속에서 담아 내고 있다. 이 당시의 민중은 식민지 조선인 모두를 상징한다. 그의 혁명적 일원론은 서구문학에 대한 민족문학의 항거였고 문예반정(文藝反正)이었던 것이다.
넷째, 단재의 작품을 소설이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루카치(Lukac's)적 관점에서가 아닌, 우리 나라 전통의 문학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논자는 ① 이광수 - 염상섭 - 이기영 - 이상 - 김승옥으로 이어지는 흐름과는 다른, ② 신채호 - 홍명희 - 황석영 - 김지하 - 이문구로 이어지는 흐름을 생각해 보았다. 잠정적으로 ① 을 이광수적 축, ② 를 신채호적 축으로 명명해 둔다. 물경스런 가설로 보일 수도 있는 두 흐름은 그러나, 크고 깊은 한국문학의 강속에 녹아 있는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져 있음은 당연한 것인 만큼 단재의 문학사적 의의는 크다. '이식문화론과 전통단절론은 이론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해묵은 과제의 실마리를 단재류의 역사전기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서구 소설의 영향보다도 고전소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다섯째, 단재의 민족주의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자칫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수주의와 영웅 사관에 대한 맹목적 찬양은 단재의 문학과 사상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단재는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살고 썼고 죽었지만 지금 우리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논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단재는 역사전기소설을 많이 창작했다. 그것은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일으켜 세우고자 영웅을 기대하던 조선 민중들의 열망을 작품으로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영웅대망론으로 영웅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해줄 것으로 믿고 영웅의 힘으로 조선사람들을 단결하게 할 수 있다는 민족의식의 소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주의자들은 열강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권을 수호하고 근대시민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과제를 문학작품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즉, 문학의 공리적 측면을 중시하여 민족의 영웅을 상상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도에서 역사전기 소설을 지은 것이다.
한편 애국계몽기에는 많은 작품들이 번안되었는데 단재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번안하면서 국가를 부흥시킨 다른 나라의 위인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역사전기소설은 국권상실에 처한 민중들의 민족애와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재는 [을지문덕](1908), [이순신전](1908), [최도통전](1909) 등의 역사전기소설을 남겼다. -
1916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한글체로 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며 단재 자신의 자전적 내용을 소설화한 근대문학 초기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일제에 대한 무한한 투쟁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는데 단재의 우국충정과 당대에 실현할 수 없는 민족적 열망을 환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단재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한놈을 내세워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를 담아냈다. 이 작품은 환상적 기법을 사용하여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개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근대소설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라사랑의 주제를 표현하려는 단재식의 방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단군기원 4240(1907)년 어느 날이다. 주인공 한놈은 하늘로부터 큰 무궁화 꽃에 내려앉는다. 그때 동편으로 우리나라 군사가 나타나고 서편에는 괴물 같은 다른 군사가 나타나 일대 접전을 벌린다. 싸움을 이긴 후 동편 장수가 무궁화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장수는 바로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乙支文德)이었다. 을지문덕과 한놈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가 사라지고 한놈은 우리나라를 구한 여러 영웅들을 만난다.
한놈은 진정 나라를 위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라고 탄식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
이 작품은 단재가 무정부주의 사상에 빠져 있던 1928년에 생산된 소설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무정부주의자로서의 허무와 저주 등이 복잡하게 드러나고 있다. 작품은 조선의 민중을 포함한 모든 피압박 민중의 처참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어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작품 구성상의 특징은 [선언문]을 포함한 논설적 문체와 소설적 구성이 혼재되어 있는 특별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재는 무정부주의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민중에 대한 부당한 착취가 어떻게 가능했던가를 보여주면서 이데올로기와 국가제도에 대한 강력한 부정의 의지를 표명한다.
이것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며 진화론과 자강론 또는 영웅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서 모든 정치제도를 부정해야 했던 무정부주의자인 단재식의 표현방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19세기 이태리 통일에 헌신한 세 영걸에 대한 역사전기소설을 단재 신채호가 번역하여 1907년 10월 서울 '광학서포'에서 출판한 것을 90년만에 다시 펴낸 영인본이다. 원저는 중국의 양계초가 저술한 것으로 1천여년 동안 소국으로 분립되어 온 이태리가 19세기에 들어와 통일을 이루는데 크게 공헌한 이들의 영웅적인 애국활동을 소설화한 것이다.
당시 단재는 28세의 청년 논객으로 일제 침략을 정면으로 폭로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국내 유일한 신문인 '대한매일신보'의 논설기자로 종사하면서 식민지나 다름없는 조국의 운명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였다. 일제는 이른바 보호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국권을 침탈하고 있었으므로 조선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애국영웅의 출현이 사회적으로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조국 독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한 단재가 투철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가지고 이태리 통일을 위해 희생적으로 투쟁한 세 영걸의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나라를 구할 애국자와 구국영웅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역술하였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이태리 통일에 공이 큰 마치니·가리발디·카부르를 주인공으로 하고 구성은 서론과 본문 26절과 결론으로 논문과 같은 형식의 역사전기이다. '황성신문'의 사장으로 그 유명한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논설을 썼던 위암 장지연이 교열을 보았으며 그는 순한문으로 쓴 서문에 국민들이 애국정신을 갖고 우리나라가 동양의 이태리가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는 글을 싣고 있다.
이 '이태리건국삼걸전' 소설의 시작은 1830년 프랑스 제2혁명이 일어나고 이태리 반도에도 격변의 물결이 밀어 닥치자 이듬해 마치니가 청년이태리당을 창설하고 통일운동의 활동에 뛰어든 시기부터이다. 이때 마치니는 25살이었으며, 가리발디는 23살, 카부르는 20살이었다. 아래의 목차에서는 이 소설의 대체적인 내용의 구성을 살펴 볼 수 있다.머리편 - 서론
제1절 - 삼걸 이전의 이태리 형세와 삼걸의 어린시절
제2절 - 마치니의 청년이태리당 창립과 사르디니아왕에게 편지 보낸 사실(1831)
제3절 - 카부르가 직접 농사를 지음
제4절 - 마치니와 가리발디의 망명
제5절 - 남아메리카의 가리발디
제6절 - 혁명이전의 형세
제7절 - 1848년의 혁명
제8절 - 로마공화국의 건설과 멸망(1849)
제9절 - 혁명후의 형세
제10절 - 사르디니아 신왕의 현명함과 카부르의 재상 임명(1850)
제11절 - 카부르의 내정개혁
제12절 - 카부르 외교정책 제1단계(크리미아전쟁)(1853∼56)
제13절 - 카부르 외교정책 제2단계(파리회의)
제14절 - 카부르 외교정책 제3단계(이태리·프랑스 밀약)(1859)
제15절 - 이태리·오스트리아 전쟁 준비와 카부르와 가리발디의 만남(1859)
제16절 - 이태리·오스트리아 전쟁과 카부르의 사직
제17절 - 가리발디의 사직
제18절 - 카부르의 재상 재취임과 남북 이태리의 통일
제19절 - 당시 남이태리의 형세
제20절 - 가리발디의 남이태리 평정
제21절 - 남북 이태리의 합병
제22절 - 제일차 국회
제23절 - 카부르의 서거와 그 이루지 못한 뜻(1861)
제24절 - 가리발디의 하옥과 영국 유람
제25절 - 가리발디의 로마 재입성과 또 다시 맞은 패배와 체포
제26절 - 이태리가 로마에 수도를 정하니 대통일의 사업이 이루어짐(1871)
마지막편 - 결론목차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태리 통일운동 전개 과정을 세 영걸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체로 인물의 전기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을 일차적인 사명으로 하면서 흥미롭게 읽힐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국권상실의 위기에 처하게 된 우리나라에서도 이 무렵 1905년 '애급근세사', '이태리국아마치전'을 비롯하여 1906년 '월남망국사', '법란서신사' 등 국권을 수호하는 애국적인 영웅들의 전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 책은 조국의 국권을 침탈하려는 일제에 맞서 투쟁적으로 항거해야 한다는 구국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태리건국삼걸전'의 서론과 결론은 신채호가 직접 소견을 밝히고 있는 부분으로 당시 그의 사상을 알아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단재는 식민지 전야와 같은 당시 상황에서 애국심을 강조하고 영웅 출현에 관한 지론을 펴고 있으며 이 소설을 인연하여 대한제국 중흥의 영웅전을 다시 짓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단재는 이 전기소설을 번역한 후 이듬해 '을지문덕'을 저술하고 '이순신전'과 '최도통전' 등 우리나라 위인에 대한 전기소설을 집필하여 국난을 극복한 위인들의 전기를 발표하였다.
이 소설에서 사용한 문체는 한주국종체(漢主國從體)로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한문에 식견이 있는 일반인으로서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문체이다. 당시 국한문체는 대체로 한자를 위주로하고 한글은 토를 다는 형태로 쓰여졌고,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을 위해서는 순한글로 쓰여진 소설 등으로 국한문체와 순한글체로 이분화되었다. '이태리건국삼걸전'에서는 띄여쓰기도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아비리가(阿非利加)로, 크리미아는 격리미아(格里米亞)로, 나폴레옹을 나파윤(拿破倫)으로 쓰는 등 지명과 인명을 한문식 표기를 함으로서 이해하기 더욱 힘든 점도 적지 않다.
어떻든 단재는 국권상실의 위기에 처한 당시 조국의 상황에서 이태리가 외국의 지배와 영향 아래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상태에서 여러 애국 영웅이 나타나 통일을 이끌어 낸다는 역사전기소설을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민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국권회복의 정신을 함양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민족분단의 현실을 타개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단재 신채호의 초기 사상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 책은 1908년 단재 신채호가 단행본으로 낸 최초의 저서인 국한문판 '을지문덕(乙支文德)'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당시는 단재가 29세의 나이로 국내 최대의 일간지이며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의 논설기자로 주옥같은 논설과 사론(史論)을 발표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던 시기였다. 또한 여성 계몽을 위해 발행되던 '가뎡잡지'의 편집인으로 직접 잡지를 만들기도 하며 양기탁·안창호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하여 기울어 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애국적인 민족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국한문판은 1908년 5월 30일에 광학서포에서 발간한 것으로 변영만·이기찬·안창호가 서문을 썼으며 이들 서문은 '을지문덕'이 어떤 목적으로 쓰여진 것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목차에서는 ‘우리나라 4천년역사상 으뜸가는 큰 위인’이란 수식어를 을지문덕이란 말 앞에다 얹어 긴 이름의 제목을 붙였다.
한글 번역판은 그해 7월 5일 발행되었는데 번역은 김연창이 하고 변영헌이 교열을 보았으며 출판은 국한문판을 발행한 광학서포가 맡았다. 한글판 '을지문덕젼'에는 국한문판에 나오는 변영만 등의 서문과 범례 그리고 목차가 실려 있지는 않고 한글로 옮기면서 띄어쓰기를 하였으며 약간의 의역과 첨삭을 하였으나 원저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서론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각성과 영웅 대망론의 취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단재는 수백년 이래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의 침략이나 위협이 있으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것은 원래 우리 겨레가 용렬하고 약한 존재라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도층인 선비들이나 대신들이 무공보다 문치가 중요하다 하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하여 백성들의 기운을 꺾고 누르는 것만 일 삼아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상, 강인하고 굳세고 굴복하지 않은 사실은 감추고 썩은 선비들이나 받들어 위대한 영웅은 한결같이 파묻어 버렸다. 이런 가운데 겨우 몇 줄 역사로 남아 있는 위대한 영웅 을지문덕이 있음은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 나라의 영웅을 그 민족이 모른다면 어찌 나라가 되겠는가’냐고 물으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영웅 숭배심이 박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내를 정돈하고 백만명의 적군을 물리친 참 영웅의 업적도 말살하고 있음을 개탄하고 ‘이제 과거의 영웅을 그려내어 미래의 영웅을 불러 보겠다’고 하여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각성과 구국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본론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를 삼한시대부터 시작하여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형세를 서술하고 그 당시 중국 및 만주 열국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을지문덕이 뛰어난 영웅적 자질로 외교 군사면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였으며 수나라의 침략군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 그 의의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되새겼다.
결론에서도 ‘20세기 새 대한의 을지문덕이여, 어찌하여 내려옴이 그리 더딘가’ 라고 하여 식민지적 상황의 극복을 위한 구국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면서‘그 나라 국민의 용감과 비겁, 뛰어남과 못남은 전적으로 그 나라 한 두 선각적인 영웅의 고무 격려가 어떠한가에 따라 나타나거나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끝을 맺으며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웅을 말하며 의기 소침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개화기 문학사에 있어서 전통적인 한문학의 전(傳)을 근대적인 전기(傳記)문학으로 바꾸어 놓는 방향을 적극 모색한 획기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종의 전기이나 엄격한 의미에서는 문학작품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역사논문에 가까운 체제로 쓰여졌으며 논설적이고 논증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허구적인 윤색은 하지 않았으며 역사 사실을 웅변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역사와 소설 형식이 서로 결합된 특징을 보이는 ‘비역사, 비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식민지로 떨어지려는 조국을 건지기 위하여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을 고취하고 영웅탄생을 하게 한다는 미래 지향적인 목적으로 집필된 역사-전기소설이라고도 말한다.
원저인 국한문판 '을지문덕'은 오늘날의 구어체 국한문 혼용체와는 다른 것으로 순한문 문체에 한글로 토를 단 형태로서 이는 한주국종체(漢主國從體) 또는 고대소설체라고도 하겠으며 언토한문체에 가까운 소설이다.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과 글을 일치 시킨 오늘날의 구어체 국한문 혼용체와는 거리가 먼 표기 방법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서론과 본론 15장 및 결론으로 되어 있다. 한글판 '을지문덕젼' 에는 차례가 없으므로 여기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서 론
제1장 - 을지문덕 이전의 한국과 중국의 관계
제2장 - 을지문덕시대의 고구려와 수나라의 형세
제3장 - 을지문덕시대의 열국의 형세
제4장 - 을지문덕의 굳센 정신
제5장 - 을지문덕의 웅도 대략
제6장 - 을지문덕의 외교
제7장 - 을지문덕의 무비
제8장 - 을지문덕 수완 밑의 적국
제9장 - 수나라의 형세와 을지문덕
제10장 - 용 같이 변화하고 범 같이 용맹한 을지문덕 ????
제11장 - 살수 풍운의 을지문덕
제12장 - 성공후 을지문덕
제13장 - 옛날 역사 지은 사람이 좁게 본 을지문덕 ????
제14장 - 을지문덕의 인격
제15장 - 무시무종의 을지문덕결 론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론, 본론, 결론 3단 구성이 완벽하게 논문 구성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국한문판에는 본문 속에 주를 달아 논증하고 있어 문학적인 또는 소설적인 조작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므로 역사논문이나 역사편찬(historiography)의 인상을 주고 있다.
이 저술이 근대소설적 요소가 배제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하나 이 때문에 오히려 개화기 저항문학을 대표할 만한 역사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1900년대 간행된 대부분의 역사-전기문학은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의식의 표현이 많았다. '을지문덕젼'은 우리의 역사를 발굴하고 작품화하여 일제의 압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고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단재는 '을지문덕젼'을 통하여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한 투쟁을 독려하였고 오랫동안 민족적 영웅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한 점과, 동족상쟁을 하였거나, 외국에 아첨하거나 조국을 배반한 자를 영웅이라고 해온 폐습을 개탄하면서 이 책이 널리 읽혀 그릇된 영웅관을 바로 잡고 통속적인 영웅소설을 몰아 낼 수 있기를 바랬다.
국권상실의 위기를 맞은 조국의 상황에서 우리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궁극적으로는 국권회복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지어진 이 저술은 오늘날 민족정기가 쇠퇴한 사회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