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 단재의 독립운동
- 성토문
- 조선혁명선언
-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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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서 단재의 정신은 절대독립론, 무장투쟁론, 민족혁명론(민중직접혁명론) 등 세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단재의 절대독립론은 3·1운동 후에 대두한 자치론·내정독립론·참정권론 등 일제와의 타협주의를 분쇄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우리 나라 독립운동에 있어 1920년대 특징의 하나는 국내의 민족주의 독립운동 노선의 일부에 조국의 완전독립을 체념하고 대일본제국 내의 조선자치구역을 추구하는 자치론자들이 대두한 것이었다. 이들은 일제와의 타협론을 제창함으로써 완전독립론과 자치론 사이에 대립·투쟁을 야기시켰다. 즉, 이러한 자치론의 대두는 독립운동 노선에 혼선을 가져오고, 일제에 대항하여 굳건히 서야 할 독립운동 노선을 비틀거리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이러한 조건에서 단재의 절대독립론은 완전독립론과 자치론의 대립·투쟁에서 완전독립론·절대독립론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비틀거리던 독립운동노선을 바로 잡아주고 우리 나라 독립운동의 갈 길을 명료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통해서 극명하게 선언된 절대독립론은 1927년에 자치론을 철저히 분쇄하고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의 노선을 정립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치었다.
또한, 독립운동 방략으로서 단재의 무장투쟁론과 민족혁명론은 한국민족의 생존의 필수조건까지 철저히 박탈하는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무장투쟁만이 이를 몰아낼 수 있으며 민중직접의 폭력혁명방법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타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단재의 이러한 독립운동론은 큰 영향을 끼치어 독립운동자들이 독립운동을 바로 민족혁명운동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혁명가라고 자처하고 독립운동을 혁명적으로 전개하도록 작용하였다.
단재의 무장투쟁론과 민족혁명론은 강도와 같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투쟁이 정당함을 가르쳐주어 그 후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방법적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의열단뿐만 아니라 김구의 상해 임시정부까지도 단재가 합리화하고 정당화한 폭력수단을 채용하게 된 것은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에서 천명한 독립운동 방략과 깊이 관련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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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승만의 미국위임통치 청원을 규탄하며
아(我) 이천만 형제자매에게 향하여 이승만·정한경 등 대미위임통치청원 및 매국·매족의 청원을 제출한 사실을 거하여 그 죄를 성토하노라.
이등의 해청원제출을 곧 4252년 3월경 아국 독립운동 발발의 동시하여 세계의 대전이 종결되자 평화회의가 개설되며, 따라서 민족자결의 성낭(聲浪)이 높았도다. 이에 각 민족이 자유대로
⑴ 고유의 독립을 잃은 민족은 다시 그 독립을 회복하며,
⑵ 갑국의 소유로 을국에 빼앗기었던 토지는 다시 갑국으로 돌리며,
⑶ 양강국간 피차 쟁탈되는 지방은 그 지방 거민의 의사에 의하여 통치의 주권을 자택하게 하며,
⑷ 오직 덕(德)·오(奧)·토(土)의 각 식민지는 그 주국이 난수(亂首)의 책벌로 이를 몰수하여 협약국에 위탁통치한 배 되었도다.이상 1,2,3항 및 민족자결문제에 의하여 구주내 수십개 신독립국과 신변경한 기개지방이 있는 이외에 실행되지 못한 곳이 더 많거니와 당초에는 각 강국들도 다 그와 같이 떠들었으며 허다 망국민족들은 이와 같이 되기를 빌었도다.
오천년 독립의 고국으로 무리한 만국(蠻國)의 병탄을 받아, 십년 혈전을 계속하여 온, 우리 조선도 이 사조에 응하여 더욱 분발할새, 내지는 물론이요 중령의 조선인도 독립을 부르며, 아령의 조선인도 독립을 부르며, 미령의 조선인도 독립을 부르며, 일본 동경의 조선유학생도 독립을 부를새, 더욱 미령의 동포들은 국민회의 주동으로 각처 향응하여 노동소득의 혈한전(血汗錢)을 거두어 평화회의에 조선독립문제를 제출하기 위하여 대표를 뽑아 파려(巴黎)에 보낼새, 이와 정 등이 그 뽑힌 바 되어 발정하다가 여행권의 난득(難得)으로 중로에서 체유할새, 피등이 합병 십년 일인의 식민지된 통한을 잊었던가, 독립을 위하여, 검에, 총에, 악형에 죽은 선충선열이 계심을 몰랐던가, 조선을 자래 독립국이 아닌줄로 생각하였던가. 거연(遽然)히 위임통치청원서 및 조선의 미국식민지 되어지이다, 하는 요구를 미국정부에 제출하여 매국·매족의 행위를 감행하였도다.
독립이란 금에서 일보를 물러서면 합병 적괴(賊魁)의 이완용이 되거나, 정합방론자의 송병준이 되거나, 자치운동의 민원식이 되어, 화국(禍國)의 요얼(妖얼)이 병작하리니, 독립의 대방을 위하여, 이·정 등을 주토치 아니할 수 없으며, 방관자의 안중에는 조선이 이미 멸망하였다 할지라도 조선인의 심중에는 영원독립의 조선이 있어, 일본뿐 아니라 곧 세계 하국을 물론하고 우리 조선에 향하여 무례를 가하거든 검으로나 총으로나 아니면 적수공권으로라도 혈전함이 조선민족의 정신이니, 만일 이 정신이 없이 친일자는 일본에, 친미자는 미국에, 친영자나 친아자는 영국이나 아국에 노예됨을 원한다 하면, 조선민족은 생생세세 노예의 일도에 윤회되리니, 독립의 정신을 위하여 이·정 등을 주토아니 할 수 없으며, 우리 전도는 전국 이천만의 요구가 '독립뿐'이란 혈과 누의 규호로 내론 동포의 성력을 단합하며, 외론 열국의 동정을 박득함에 재하거늘, 이제 위임통치의 사론을 용허하면 기로를 열어 동포를 미혹케 할 뿐 아니라, 또 골계모순(滑稽矛盾)으로써 외국인에게 보이어 조선민족의 진의가 어데 있는가를 회의케 하리니 독립운동의 전도를 위하여 이·정 등을 주토 아니할 수 없도다.
위임통치청원에 대하여 재미 국민회중앙총회장 안창호는 동의든지 묵인이든지 해회의 주간자로서 이·정 등을 대표로 보내어 해청원을 올리었으니, 그 죄책도 또한 용서할 수 없으며, 상해의정원이 소위 임시정부를 조직할때에, 앞서 전파된 위임통치청원 운운의 설을 이 등과 사감있는 자의 주출(做出)이라 하여 철저히 사핵하지 않고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추정함도 천만의 경거어니와 제2차 소위 각원을 개조할 때에는 환하게 해청원의 제출이 사실임을 알았는데, 마침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거한 죄는 더 중대하며, 특파대사 김규식이 구주로부터 돌아와
'조선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어찌하여 위임통치청원자 이승만을 대통령에 임하였느냐.'
하는 각 국인사의 반문에 아무 회답할 말이 없었다 하여, 만방에 등소(騰笑)된 실상을 전하거늘 그래도 이는 존재하였다 하여 그 범죄의 탄핵은 없으며, 그 청원의 취소시킬 의사도 없이, 오직 옹호의 책획함에 열중하는 의정원이나 각원이란 모모들의 민원식과 같이 철저한 주장이 아니고 다만 시(時의) 미오(迷誤)인 고로 이도 지금에는 이 일을 옳은 줄로 자처함이 아니니 구태어 추죄할 것이 없다 하나, 그럴진대 피등이 즉시 미국정부에 향하여, 그 청원의 취소를 성명하고 국인에게 향하여 망작의 죄를 사하여서 만분의 일이라도 자속(自贖)의 도를 구함이 가하거늘, 이제 십수의 지점을 불원하고 엄연히 상해에 래하여 소위 대통령의 각의로 오히려 여론을 농락하려 하니 이는 화심을 포장한 역적이 아니면 구차용녹(苟且庸碌)의 비부(鄙夫)라, 역적이나 비부를 가차(假借)하여 국민의 명예를 오욕하면 또한 가통하지 아니한가.
당초에는 해청원이 제출 여부·접수 여부가 모두 모호암매에 중에 있으므로 본인 등도 의려만 포할 뿐이요, 진하여 주토의 거를 신치 못하였더니, 오늘 와서는 사실의 전부가 폭로되어 우리 국민이라고는 용인하지 못하겠도다.
자에
제일 이 등에 죄상을 선포하여 후래자를 위하여 경징의 의를 소화(昭華)하며,
제이 미국정부에 향하여 이천만을 대표하였다 운함은 이승만·정한경 등은 무자이니, 해청원은 곧 이승만·정한경 등 일, 이개인의 자작이요 우리 국민의 여지할 배 아니라 하여, 그 청원의 무효됨을 성명하기로 결의하고 우의 성토문을 발하여 원근의 동성으로 전도의 공제(共濟)를 바라노라.기원 사천이백오십사년 사월 십구일
강경문, 고광인, 기운, 김주병, 김세준, 김재희, 김원봉, 김창숙, 김맹여, 김대호, 김갑, 김세상, 김병식, 김탁, 김창근, 김자언, 남공선, 도경, 이대근, 이성파, 이극로, 이강준, 이춘, 이기○, 임대주, 박건병, 박용옥, 박기중, 방한태, 배달무, 매환, 서백양, 서백보, 손학해, 송호, 신채호, 신달모, 안여반, 오기찬, 오성윤, 윤대제, 장원갱, 장건상, 전홍승, 정인교, 조준, 조진원, 조정, 송철, 최용덕, 최묵, 최윤명, 하학, 한흥 -
의열단 선언문
1.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박탈하였다.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 어장 … 내지 소(小)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절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百一)세, 지방세, 주초(酒草)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을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웬만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輸入)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율(速率)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아귀(餓鬼)부터 류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여행(勵行)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寸步)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結社),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회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를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하여 소잔오존(素盞嗚尊)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하면 강도(强盜)정치를 찬미하는 반(半)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유(拘留)되어 주리, 칼 씌우기 차꼬 채우기, 단금질, 채찍질, 전기(電氣)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廢疾者)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斷絶)하며, 진취활발의 기상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편태(鞭笞), 구박, 압제를 받아 환해(環海)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작은 인류위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을미 이후 ?십삼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의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삼일 운동 이후 수원, 선천 …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屠戮)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인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을 '산 송장'으로 만들려 한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 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2.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가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묵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 재산 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이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보느냐? 삼일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매국노 한둘을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하는 자는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막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慨然)히 차등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아귀(餓鬼)가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은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대의사(奴隸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구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가종의 자치임을 물문(勿問)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撤還)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하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는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일(一)은 금전의 힘으로 그 선조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일(一)은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上古)의 자유발달한 그 여택(餘澤)을 지키고 보존함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인혈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같은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존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자오(自嗚)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자(내정독립, 자치, 참정권논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아래와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제일은 외교론이다. 이조 오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을 삼아 더욱 그 말기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甲國)을 끌어들여 을국(乙國)을 제함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의존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었다. 즉 갑오, 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누십만의 생명과 누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 노 양국을 물리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일검(一劍) 일탄(一彈)을 우매하고 탐욕스러우며 난폭한 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공함(公函)이나 열국(列國) 공관에 던지며 장서(長書)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고약(孤弱)을 애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이 처분·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천 년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哈爾賓 ??의 총, 종현(鐘峴)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망국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모모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日美)전쟁, 일로(日露)전쟁 등 기회(機會)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過信)의 선전이 도리어 이천만 민중의 분용(奮勇)전진의 의기를 타소(打消)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 2는 준비론이니, 을미조약의 당시에 열국공관에 빗발듣듯하던 종이쪽으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해아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峨冠大衣)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산양포수의 화승대(火繩隊)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은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할 용기가 아니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感覺)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었다.
경술국치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년 내외각지에서 목이 터질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회(會)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4.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 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위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 중 누가 어질고 누가 난폭한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오,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종지(宗旨)가 되고, '단식대장이영왕사(簞食壺漿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었다. 그러나,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열기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벗어나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覺悟)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규(熱叫)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각오의 제1로(路)니라.
일반 민중이 기(飢), 한(寒), 곤(困), 고(苦), 처호(妻呼) 아제(兒啼), 세납(稅納)의 독봉(督棒)에, 사채(私債)의 독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하여도 죽을바를 모르는 판이다. 이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主因)되는 강도정치의 실시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모든이가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一路)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는 그 의분에 못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널리 전파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불러 일깨워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십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장(億千張) 신문잡지가 일회 폭행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끝이려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벼랑끝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이전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대의로 격기(激起)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熱烈)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잠시 드러났지만 또한 폭력의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 폭력' 양자 중 하나만 빠지면 비록 굉열장쾌(轟列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천둥같이 끝나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驅逐)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奸猾)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이오,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1.조선총독 및 각 관(官) 관리
2.일본천황 및 각 관 관리
3.정탐노(偵探奴), 매국적(賣國賊)
4.적의 일체 시설물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紳士)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中傷)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서 갚을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폭력을 파괴하려는 것은 제1은 이족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전제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한 조선을 발현하기 위하여 이족통치를 파괴함이니라.
제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로운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로운 조선민중을 발견 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3은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신이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오,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이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4는 사회적 불균형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위에 강자가 있고 천자(賤者)위에 귀자(貴子)가 있어 모든 불균형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삭(剝削), 서로 질투 구시(仇視)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잔해(殘害)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잔해하여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영이 되고 말뿐이니, 민중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함이니라.
제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들이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에 반항치 못함은 전적으로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鐵鎖)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주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균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파타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기(旗)'가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치상(癡想)만 있다하면 오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오 둘이 아닌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이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여
불절(不絶)하는 폭력 -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1928년 4월 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북경회의 동방연맹대회 선언문
우리의 세계 무산대중! 더욱 우리 동방 각 식민지 무산민중의 혈·피·육·골을 빨고, 짜고, 씹고, 물고, 깨물어 먹어 온 자본주의의 강도제국 야수군들은 지금에 그 창자가 꿰어지려 한다. 배가 터지려 한다.
그래서 피등(彼等)이 그 최후의 발악으로 우리 무산민중이 더욱 동방 각 식민지 민중을 대가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박박 찢으며 아삭아삭 깨물어, 우리 민중은 사멸보다도 더 음참한 불생존의 생존을 가지고 있다.
아, 세계무산민중의 생존! 동방무산민중의 생존!
소수가 다수에게 지는 것이 원칙이라 하면, 왜 최대 다수의 민중이 최소수인 야수적 강도들에게 피를 빨리고 고기를 찢기느냐?
왜 우리 민중의 피와 고기가 아니면 굶어 뒈질 강도들을 박멸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놈들에게 박멸을 당하느냐?
피등의 군대 까닭일까? 경찰 까닭일까? 군함·비행기·대포·장총·장갑차·독가스 등 흉참한 무기 까닭일까?
아니다. 이는 그 결과요, 원인이 아니다.
피등은 역사적으로 발달성장하여 온 누천년이나 묵은 괴동물들이다. 이 괴조물들이 맨 처음에 교활하게 자유·평등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 민중을 속이어 지배자의 지위를 얻어 가지고, 그 약탈행위를 조직적으로 백주에 행하려는 소위 정치를 만들며, 약탈의 소득을 분배하려는 곧 '인육 분장소'인 소위 정부를 두며, 그리고 영원 무궁히 그 지위를 누리려 하여 반항하려는 민중을 제재하는 소위 법률·형법 등 부어터진 조문을 제정하며, 민중의 노예적 복종을 시키려는 소위 명분·윤리 등 먼동이 같은 도덕율을 조작하였다.
동서 역사에 전하여 온 제왕·성현이, 강도나 야수를 옹호한 강도 야수의 주구들이다. 민중이 왕왕 그 약탈에 견딜 수 없어 반항적 혁명을 행한 때도 많았지만, 마침내 기개 교활한에게 속아 다시 그 강도적 지배자의 지위를 허여하여 '이폭이폭(以暴易暴)'의 현상으로서 역사를 조반(繰返)하고 말았었다. 이것이 곧 다수의 민중으로 소수의 야수들의 유린을 당하여 온 원인이다.
피등 야수들이 중세기 이래 자유도시에서 발달하여 오는 과학과 공업적 기계 즉, 증기기계·전기기계 등을 절취하여 나날이 정치적·경제적·상공업적·군용적 모든 시설을 확대하며 증가하여 방연한 대지구가 우리 무산민중의 두뇌신골을 가루가 되도록 갈고 있는 일개의 맷돌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피등은 우리 민중의 참상에는 눈이 멀었다. 우리 민중의 비명과 애호에는 귀가 먹었다.피등은 다만 우리 민중의 고기를 먹는 입만 딱 벌리고 있다.
아, 잔학·음참·부도한 야수적 강도! 강도적 야수! 이 야수의 유린 밑에서 고통과 비참을 받아 오는 우리 민중도 참다 못하여, 견디다 못하여, 이에 저 야수들을 퇴치하려는, 박멸하려는, 재래의 정치며, 법률이며, 윤리며, 기타 일체 문구를 부인하자는 군대며, 경찰이며, 황실이며, 정부며, 은행이며, 회사며, 기타 모든 세력을 파괴하자는 분노적 절규 '혁명'이라는 소리가 대지상 일반의 이막(耳膜)을 울리었다.
이 울림이 강조됨을 따라 피등 야수들의 신경도 비상히 앙분하여 극도의 전율적 안광으로 우리 민중의 태도를 심시(審視)한다.
그래서 군인의 총과 경찰의 칼로 혁명적 민중을 위압하는 동시에 신문·서점·학교 등을 설시 혹 매수 혹 검정하여, 피등의 주구인 기자·학자·문인·교수 등을 시키어 그 야수적 약탈·강도적 착취를 공인하며 변호하며, 예찬하며, 민중적 혁명을 소멸하려 한다.
이 야수세계, 강도사회에 정의니 진리니 가 다 무슨 방귀이며, 문명이니 문화니가 무슨 똥물이냐?
우리 민중은 알았다. 깨달았다. 피등 야수들이 아무리 악을 쓴들, 아무리 요망을 피운들, 이미 모든 것을 부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대계를 울리는 혁명의 북소리가 어찌 거연(遽然)히 까닭없이 멎을소냐. 벌써 구석구석 부분부분이, 우리 민중과 피등 야수가 진형을 대치하여 포화를 개시하였다.
옳다. 되었다.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이 피등 소수의 야수들과 선전하면 선전하는 날이 무산민중의 생존! 이것을 어데가 찾으랴.
알 것이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의 생존을 빼앗는 우리의 적을 없애버리는 데서 찾을 것이다. 일체의 정치는 곧 우리의 생존을 빼앗는 우리의 적이니, 제일보에 일체의 정치를 부인하는 것, 소극적 부인만으로는 곧 '동탁을 곡사(哭死)'하려는 … (중간 탈락) …피등의 세력은 우리 대다수 민중의 용허에 의하여 존재한 것인즉, 우리 대다수 민중이 부인하며 파괴하는 날이 곧 피등이 그 존재를 잃는 날이며, 피등의 존재를 잃는 날이 곧 우리 민중이 열망하는 자유 평등의 생존을 얻어 무산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이루는 날이다. 곧 개선(凱旋)의 날이니. 우리 민중의 생존할 길이 여기 이 혁명에 있을 뿐이다.
우리 무산 민중의 최후 승리는 확정필연한 사실이지만, 다만 동방 각 '식민지'·'반식민지'의 무산민중은 자래로 석가·공자 등이 제창한 공팡내 나는 도덕의 '독'안에 빠지며, 제왕·추장 등이 건설한, 비린내 나는 정치의 '그물' 속에 걸리어 수천년 헤메다가, 일조에 영·법·일본 등 자본제국 경제적 야수들의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압력이 전속력으로 전진하여 우리 민중을 맷돌의 한 돌림에 다 갈아 죽이려는 판인즉, 우리 동방민중의 혁명이 만일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면 동방민중은 그 존재를 잃어 버릴 것이다.
그래도 존재한다면 이는 분묘의 속 … (중간 탈락) …우리가 철저히 이를 부인하고 파괴하는 날이 곧 피등이 그 존재를 잃는 날이다.